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2000년 전 로마법이 우리에게 묻는 것
입력 : 2025.05.22 03:30
로마법 수업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이 말이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수업을 들어도 시험 점수나 부모님의 직업, 심지어는 소셜미디어의 팔로어 수로 평가받기도 하니까요. 이렇듯 우리는 늘 어떠한 '기준'에 따라 서열화되고 스스로 그 기준을 내면화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고대 로마 사람들도 신분과 계급이 엄격히 나뉘어 있었고, 그만큼 불평등과 박탈감도 컸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토론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로마의 법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법과 제도를 통해 제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로마법은 단순히 옛날 법이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해주는 거울 같은 존재죠.
국내 최초로 바티칸의 변호사가 된 저자는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다시 묻습니다. 저자는 로마법의 논리에 대해 쓴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원칙을 되새깁니다. 그 내용을 보겠습니다. 고위 공직자인 '정무관'은 군 복무를 마쳐야만 될 수 있었으며 이 직책은 1년 임기의 무보수 명예직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최고위 공직자인 '집정관'은 공무직 경호원 외 개인 경호원을 둘 수 없었다고 합니다. 권력을 쥔 자에게 너무 많은 특권을 제공하는 것을 경계하고, 시민들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로마의 원칙이었지요.
로마에서는 지위가 높을수록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시민의 비판이나 조롱을 견디지 못하는 정치인은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여겼고, 부정을 저지른 재판관은 유배를 당했습니다. 당시 유배는 단순한 벌이 아니라 시민권 박탈을 뜻했는데, 즉 '공동체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는 혹독한 선언이었어요.
책은 로마의 법과 판결을 따라가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함께 비춰줍니다. 해방된 노예가 다른 노예를 억누르는 모습, 권력자가 약자를 이용하는 구조, 겉으로는 평등해 보이지만 속은 서열로 가득한 사회가 로마였습니다. 모두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풍경이지요. 2000년 전 로마의 모습은 '법이란 무엇인가' '정의는 어떻게 구현되는가' '공동체는 어디까지 개인에게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합니다.
책엔 고대 로마 사회가 남긴 격언이 나옵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Homines nos esse meminerimus)." 고대의 다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깊은 위로이자 핵심 메시지입니다.